일상/책읽기

미디어아트 - 진중권 저자초청강연회 지상중계

바다오리~ 2009. 12. 4. 10:48

미디어아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만나다

『미디어아트』 저자 진중권 초청 한라도서관강연회 지상중계(2009년 8월 29일)

 

1. 미래의 생산형태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미래의 생산형태는 예술, 인문학, 기술의 결합을 통해 이루어 질 것이다.

예술, 인문학, 기술의 삼각컨소시엄을 통해 컨텐츠(Contents)가 만들어진다.

미래의 기술은 예술과 기술의 결합으로 이루어 질 것이며, 이러한 기술에는 창의성과 예술성이 더해져야만 기술로 승화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기능으로 전락할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예술가들은 최첨단 과학기술을 통해 예술적 표현을 대신하게 될 것이다. “아이팟”의 경우에서 보면 독창적인 기술과 디자인이 적절하게 결합되어 성공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이미지의 관점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본다면 다음과 같다.

 

과거(19세기)

현재(20세기)

미래(21세기)

주도적 이미지

미술관에서 관람

영화, 사진

컴퓨터게임(상호작용)

미래의 주도적이미지인 미디어아트는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관객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완성을 시켜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2. 기술과 예술이 결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로봇공학을 통해 기술과 예술의 결합에 대해서 살펴보자

로봇은 크게 기능성로봇과 동반자로봇으로 구분할 수 있다. 기능성로봇에는 청소로봇부터 공장자동화로봇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일상에 존재한다. 기능성로봇은 인간과는 “나와 그것의 관계”에 지나지 않으므로 우리의 의식에서 구분이 된다. 반면에 동반자로봇은 인간과 “나와 너의 관계”로 발전되어 호감을 주는 단계로 발전이 되었다. 그런데 지나친 호감도는 오히려 반감을 가지게 되는 역효과를 내포한다. 사람과 닮았지만 사람이 아닌 로봇은 어두운 골목에서 마네킹을 보는 섬뜩함을 주게되고, 결국 시체를 연상시켜 반감을 가지게 된다. 이런 ‘섬뜩함’의 문제는 일본의 로봇공학자 마시히로 모리(Masahiro Mori)에 의해 다음과 같은 그래프로 소개되었다.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는 인간이 로봇이나 인간이 아닌 것들에 대해 느끼는 감정에 관련된 로보틱스 이론이다.

Mori의 이론에 따르면, 로봇이 점점 더 사람의 모습과 흡사해 질수록 인간이 로봇에 대해 느끼는 호감도가 증가하다가 어느 정도에 도달하게 되면 갑자기 강한 거부감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나 로봇의 외모와 행동이 인간과 거의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면 호감도는 다시 증가하여 인간이 인간에 대해 느끼는 감정의 수준까지 접근하게 된다.

이때 '인간와 흡사한' 로봇과 '인간과 거의 똑같은' 로봇 사이에 존재하는 로봇의 모습과 행동에 의해 느껴지는 거부감이 존재하는 영역을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라고 한다. 이 이름은 '거의 인간에 가까운' 로봇이 실제로는 인간과는 달리 과도하게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때문에 인간과 로봇 간의 상호작용에 필요한 감정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한다는 것을 잘 잡아내고 있다

(출처: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

 

결국 인간에 가까운 로봇은 만들 수 없는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딜레마에서 기술과 예술의 결합이 필요해진다.

기술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봉착했을 때 기술의 문제를 예술로 돌파하는 것이다. 아름답게 디자인을 하여 언캐니밸리를 무사히 건널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과는 확연히 구분을 하되 기계처럼 보이지 않는 앙증맞은 디자인으로 호감을 얻을수 있다는 것이다. 타츠야 마쯔이(Tatsuya Matsui)의 화동로봇이 이를 잘 표현해 준다.(아래사진)

 

이와는 반대로 오히려 언캐니벨리에 사람들을 집어넣어서 스스로 헤쳐나오게 하는 시도도 있다. 데이비드 핸슨(David Hanson)은 우리에게도 친근한 인물이다. 아이슈타인의 얼굴을 본 딴 ‘앨버트 휴보’를 한국과학기술원과 공동적으로 제작했던 사람으로 오히려 섬뜩함으로 호감을 주고자 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아래사진)

 

호감의 문제는 인간다움이라는 외모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인간과의 상호작용으로 해결할 수 있다. 공장에서 사용하는 조립로봇을 음악을 틀어주는 DJ로 활용하면 호감이 증대될 수 있듯이 로봇공학의 발전은 기술의 발전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연구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문학과 예술의 문제에서 접근이 이루어져야 하며 이러한 결과를 기술과 결합시킨다면 언캐니밸리를 넘어서 인간에 가까운 로봇과의 동거가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 우리의 기술수준은 어디로 향하는가

 

현재의 기술수준은 모든 존재의 생성단위 수준에서 조작이 이루어지고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생성과 조작이 일치하는 것은 신의 영역에 해당하며 이는 곳 창조의 세계이다. 우주의 탄생은 빅뱅이론에서 찾는다. big BANG의 단어를 한번 비틀어서 현재 기술수준을 고민해 보자. 이러한 고민은 우리가 앞으로 나갈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방식이다.

Bit는 이미지의 최소단위이다. 아날로그시대 이미지는 생성과 조작이 분리되어 있다. 그러므로 조작은 티가 날 수 밖에 없다. 디지털시대 이미지는 비트단위로 생성이되고 생성단계에서 조작이 가능하므로 조작과 원본을 구분할 수 가 없어진다.

Atom은 존재의 최소단위로 미립자의 상태를 말한다. 에너지가 물질로 변해서 우주가 탄생하듯이 나노공학을 통해 새로운 물질의 창조가 가능해진다.

Neuron은 뇌의 최소단위이다. 신경망으로 이루어진 뇌구조를 컴퓨터에 이용한다면 현재수준의 컴퓨터와는 다른 수준으로의 기술발전이 가능해진다.

Gene은 생명의 최소단위이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킬 수 있다. 새로운 생명체의 탄생을 통해 미래사회에는 인간만이 주류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종의 생명체가 공존하는 Post Humansociety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스타트렉을 보면 우주카페에 모인 다양한 형태의 우주종족이 우리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종의 출현을 포용할 수 있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4. 기술적 상상력의 시대

 

우리 인간이 영위하는 삶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구분을 한다면 과거의 삶은 “주술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자연의 거대한 힘에 굴복하여 살아가는 현실에서 나약한 인간은 주술의 힘을 빌리게 된다. 객관적으로 자연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므로 주관적인 힘으로 주술에 의존하게 되고 그를 통해 위안을 얻게 된다. 또한 자연의 복제품을 만들어 위해를 가함으로서 자연의 힘을 누그러뜨리려 노력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술은 실상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는 못한다.

가상과 현실이라는 두 개의 존재를 자각하게 되면서 인간은 과학적인 사고와 철학적인 사고를 갖게 되고 분별력을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분별력을 통해 현재 우리 인간의 삶은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를 달리표현하면 “기술적 분별력의 시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분별력이 생기면서 우리는 상상력을 잃어버렸다.

다가올 미래는 우리가 잃어버린 상상력이 기술에 더해지는 “기술적 상상력의 시대”가 될 것이다. 과거 막연히 주술의 힘을 빌리던 시대와 달리 디지털을 통한 마법의 시대가 되는 것이다.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는 최첨단 장비를 통해 상상이 곧 현실이 되는 시대를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 사회는 기술수준 보다는 상상력이 좌우하는 사회가 될 수 있다. 이미 미국의 첨단 과학기술을 선도하는 실리콘밸리는 상상력을 창조하는 것에 주력하고, 이러한 상상력을 기술로 실현하는 단계는 인도와 같은 기술적 능력이 뛰어난 후발국가에 하청을 주는 것으로 시스템이 바뀌고 있다. 결국 미래사회는 기술의 보편화를 통해 상상력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고도의 지적사회가 될 것이다.

 

5. 이미지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이미지는 누가 최초로 제작하였는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다이달로스(Daidalos)와 피그말리온(Pygmalion)이 최초인 것 같다.

다이달로스는 날개를 만들어 하늘로 날아올랐고, 피그말리온은 조각상을 인간으로 만들었다. 이는 현실과 가상의 구분이 없는 마법의 이미지이다. 이와는 반대로 실제 현실에 기반을 둔 최초의 이미지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리스의 두 화가 파라시우스(Parrhasius)와 제우시스(Zeuxis)의 그림 경쟁이다. 제우시스가 포도나무를 너무나 정교하게 그리자 새들이 포도를 먹기 위해서 날아와 앉기 시작했다. 곧이어 파라시우스는 커튼을 그렸는데, 자신의 그림 위에 새들이 날아와서 앉았다는 사실에 고무된 제우시스는 파라시우스에게 "어서 커튼을 거두고 그림을 보여달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제우시스는 곧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나는 겨우 새들을 속였을 뿐이지만 파라시우스는 예술가를 속였다"고 말했다. 이것은 가상과 현실이 구분되는 현실의 이미지이다.

 

5-1. 몰입(Immersion)

 

다이달로스와 피그말리온이 행한 마법의 이미지를 디지털기술로 마법을 행하는 것이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의 세계이다. 주사위의 눈은 6개이다. 주사위를 던지면 1개의 눈만 나타난다. 여기서 나타난 1개의 눈은 현실이다. 나머지 5개의 눈은 잠재적세계(Virtual)이다.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실현될 가능성의 현실이 곧 가상현실이다.

최초의 가상현실 장비는 1962년 모튼 하일리그(Morton Heilig)라는 사진가에 의해 만들어진 센소라마(Sensorama)라는 것이다. (아래그림-오토바이를 타고 찍은 거리풍경을 보여주는 가상현실 장비)

 

현재는 다양한 형태의 장비가 개발되었으며 CAVE(Computer-Assisted Virtual Environment Type)시스템이 많이 활용되고 있다. 4면의 벽에 영상을 투사하여 가상의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장치이다. (아래그림)

  

5-2. 인공생명(Artificial Life)

 

예술작품을 살아있게 만드는 기술이 마법이 아닌 현실로 존재하는 것이 인공생명이다. 조작되지 않고 스스로 살아서 움직이고 창조되는 형태가 가능한 것이다. 가장 쉬운 예는 컴퓨터바이러스가 하드디스크를 파괴하는 과정을 그래픽으로 표현한 것이 있으며, 물분자를 물리학적 법칙에 의거해 만들어서 폭포수를 표현하는 그래픽을 만들고 이는 계속해서 스스로 물분자를 생성하는 진짜 폭포의 형태로 표현된다. 단순한 이미지의 반복이 아닌 물분자의 생성을 통한 수백만가지의 다양한 형태를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형태의 다른 것은 칼 심스(Karl Sims)의 도형을 들 수 있다. 단순한 사각형의 단세포 도형이 스스로 움직이면서 다른 단세포와 결합하여 새로운 형태를 가지고 계속해서 움직이면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프로그램된 형태가 아니라 단세포상태에서 스스로 다세포로 진화하는 과정을 생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가상현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이지만 살아있는 생명체가 되는 것이다.

 

5-3.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현실세계에 추가적인 정보를 사용자에게 보여줌으로서 증강된 현실을 만들어낸다. 현실세계위에 정보가 뿌려진다는 점에서 모든 정보가 다 가상인 가상현실(VR)과는 구분된다. 이러한 증강현실(AR)을 예술로 표현한 것은 미술관 또는 박물관에 작품을 수장고에 넣어두고 모니터를 개인에게 지급하여 관람객은 모니터를 들고 해당 지점에 가면 모니터상에 해당 작품이 구현되는 형태이다. 실제 현장에는 없지만 실제와 같은 형태로 모니터상에 존재하는 것이다.(아래그림)

 

 

5-4. 상호작용(Interaction)

 

인간과 기계가 상호작용을 함으로서 호감도를 증가 시키고 자연스럽게 기술에 접할수 있는 측면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아이들은 컴퓨터와 상호작용을 친숙하게 받아들이고 난이도의 증가를 즐기는 반면에 어른들은 복잡한 기술적 구조에 반감을 가지고 두려워하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아래 소개하는 마사키 후지하타(Masaki Fujihata)의 Beyond Pages라는 작품은 어른들에게 친숙한 책과 책상을 소재로 미래를 보여주어 쉽게 이해하고 친숙해지는 작품이다(아래그림)

 

5-5. 융합(Convergence)

 

다양한 형태로 발달한 이미지들은 이제 기술의 발달로 융합을 이루게 된다. 소리, 텍스트, 이미지가 하나로 융합되어 소리가 텍스트로, 텍스트가 소리로, 이미지가 소리로 변하는 것이다. 가상현실의 공간에 관람객이 직접 개입하여 작품을 완성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먼저 소리를 이미지로 구현하는 작품을 소개한다. 골란 레빈(Golan Levin)의 Messa di voco라는 작품이다. 이를 텔레심포니(A Telesymphony)라고도 한다. (아래그림)

 

다음은 카밀 우터백(Camille Utterback)의 Text Rain이라는 작품으로 이는 관람객이 그림자로 참여하여 비처럼 내리는 택스트들을 피하기도 하고 받아들이기도 하는 재밌는 작품이다.(아래그림)

 

6. 결론

 

지금까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이미지변화와 기술에 대해 미디어아트 작품을 가지고 설명을 해 보았다.

지금까지는 기술과 예술은 서로 다른 형태로 발전을 하였지만 앞으로는 서로가 보완적이고 융합의 형태로 나가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기술과 예술의 경계가 모호해지면 예술이 단순한 기술의 시연장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그러므로 미디어아트는 기술적 새로움과 미학적 새로움이라는 두 가지 고민을 가지고 접근해야만 과학을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으며, 이러한 것들이 궁극적으로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본 글은 저자의 강의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므로 단락의 나눔이나, 목차는 저자의 의도와는

다를수 있으며 글의 전개상 필요에 의해 구분을 둔 것임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현재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전시중인 “다빈치의 꿈”전시회가 미디어아트에 관한 주제이므로

이 글을 보고 관람을 하면 많은 도움을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