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영화보기

마더 - 봉준호를 다시보다

바다오리~ 2012. 11. 12. 21:43

어제 일요일 저녁

공부도 잘 안되고, 인터넷 문제로 하루 쉬게 되었다

그렇게 하루를 쉬고있는 도중에 "마더"를 보게되었다

봉준호 감독의 2009년도 영화

'살인범의 누명을 쓴 아들을 살리기위한 처절한 모성애'

'내 아들만 아니면 된다는 비뚤어진 모성애' 정도로 생각하고

당시 개봉한 영화를 보지는 않았다

모성애가 싫었고 그리고 김혜자의 연기도 싫었다

왜냐하면 "전원일기"를 통해 너무나 봐온 모습이라 지겨워서

그렇게 영화평도 보지않고 그렇게 흘러

드디어 어제 저녁 심야에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그냥 빨려 들어갔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뜬눈으로 보았다

보통 심야에 나오는 영화는 보다가 잠드는게 일상이었는데

또렷한 정신으로 엔딩까지 보았다

 

 

그리고 충격을 받았다

봉준호를 다시 보게되었고, 김혜자의 연기를 그냥 존경스럽게 보았다 

영화관에서 보지 못하고 지나간 것을 너무나 미안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 제목이 말하듯 "마더"하면 모성애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난 단 다음 왜 제목이 "마더"인지 알게되었다

모성애가 아니라 자신의 얘기인 것이다

아들이라는 장치를 통해 엄마의 죄를 묻고 답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더"라는 제목을 붙인 감독의 선택에 찬사를 보낸다

두개의 의미를 단 하나로 강렬하게 압축한 제목

 

 

영화로 들어가

아들이 범하는 살인, 처음에는 다들 여기에 집중하게 되고

그래서 영화가 재미없다느니, 이게 뭐냐 하는데

소녀의 죽음은 단지 엄마의 본성을 이끌어내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고

그 사건으로 종횡무진하는 엄마의 동선과 내면이 영화의 핵심이다

결국 이 영화는 범죄 영화가 아니고 한 엄마의 내면을 다룬 독백과도 같다

그런점에서 시나리오의 치밀함이 돋보인다

 

영화에서 네 장면이 내용을 압축하는 것으로 보인다

장면1. 하나는 얼핏 스쳐 지나가는 장면에서 어린아이에게 박카스를 쥐어 주는 것

장면2. 교도소에서 엄마와 아들이 대화를 나누다 귀신을 본듯 소스라치게 놀라는 엄마

         "생각났어.. 엄마가 나 5살때.. 나죽일라고 농약박카스 줬잖아"

장면3. 고물상 영감을 죽이고 불을 지르고, 능선에서 불타는 고물상과 나란히 걷는 장면  

장면4. 아들이 무죄로 풀려나고, 친구들과 관광을 떠나는 버스안, 허벅지에 침을 놓고는 친구들과 춤추는 장면 

         "가슴의 응어리랑 나쁜 기억 싹 잊을 수 있는 침자리가 허벅지에 있는데"(고물상 영감에게 하던 대사)

 

사실 아들을 위한다고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아들을 통해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엄마)에만 집착하는 인간의 모습

결국 아들을 통해 거울에 비치듯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못볼 것을 본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는 아들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게 된다

자신이 저지른 그 죄가 드러나지 않게

고물상 영감을 죽이고 불을 지르면서 자신의 원죄가 사라지기를 빌면서

죄가 없던 원래의 시간으로 되돌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불타는 고물상과 나란히 걷는다

(능선을 걷는 이 장면이 이 영화의 가장 극적인 장면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그것도 아들이 찾아온 침통으로 다시 물거품되고

결국 아들과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면서 서로의 아픔을 가슴에 묻는다

5살의 지능으로 멎었던 아이도, 침통을 건네주면서 28살의 청년으로 돌아온 듯 하다

그리고 엄아는 아들이 건네준 그 침통으로 스스로 기억을 지워버리고.......

모든것은 사라지고 원래의 모습이 되었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지만

그들을 위해 애꿎은 소녀와 고물상 영감이 희생되었다

아무도 그들의 희생에는 관심도 없이

 

영화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가 내내 떠 올랐다

엄마가 삶이 힘들어 아들을 죽이고자 했던 과거의 그 "죄"

그로인해 아이는 다시 삶을 찾았으나 5살에 멈춰버린 지능으로, "바보"라는 말에 반응하여 죄를 짓고

그 죄를 믿지 못하는 엄마는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직접 진실을 밝히고자 헤매는데

결국 진실의 끝은 자신이 저지른 "죄"라는 것을 알고

과거의 죽음에서가 아닌, 현재의 형벌에서 아들을 다시 살리고자 스스로 죄를 범하고

모든것을 잊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처절한 몸부림

결국 내아들만 아니면 된다는 비뚤어진 모성애가 우리 가슴을 짓누른다

우리도 이렇게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아닌지

살인이든, 다툼이든 죄의 경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것만 가지고 보겠다는 극악한 모성애를 강렬하게 후비는 것 같다

 

김혜자의 연기는 그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시"에서 보여준 윤정희의 연기가 우아하고 절제된 감정을 표현했다면

김혜자는 원초적인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지만 그것이 추하지 않고 아름다웠다

"시"에서 윤정희가 소녀가 죽은 다리위에서 강을 바라보는 모습과

옥상에서 소녀의 죽음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김혜자의 모습은 전혀 다르지만 비슷하다

 

역시 연기는 포도주처럼 오래되어야 그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르는 모양이다

김혜자, 윤정희 같은 분들이 이런 작품을 통해 여우주연상을 받아야 함을 다시 느낀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나서

이런 역할을 맡은 배우들은 영화가 끝나도 역할이 주는 무게감에 굉장히 힘들어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배우들이 술이나 약물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우리는 배우들의 연기를 호평하고 즐겁게 보지만

그들은 생사를 넘나드는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갑자기 이 영화를 보고나서 배우는 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너무나 깊게 와 닿는다

단 한장면에 스치고 나오는 배우라도 우리는 존경스럽게 그들의 수고에 감사를 드려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