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책읽기

김영갑님 사진(중아일보기사)

바다오리~ 2005. 5. 31. 13:51
[문화 노트] 시름 남겨두고 떠난 사진작가 김영갑
 
 29일 자정쯤. 제주 삼달리의 사진갤러리 '두모악'은 황량했다. 정문을 대신한 돌기둥에 '근조(謹弔)'라 적힌 노란 등만이 갤러리 주인이 이날 오전 숨졌음을 희미하게 알릴 뿐이었다.
 
여남은이나 될까. 그래도 평소 연락이 끊겼던 유족들이라도 영정을 지키고 있어 다행이었다. 23년 동안 제주의 속살을 묵묵히 뷰파인더에 담아오던 사진작가 김영갑(사진)의 상가 풍경은 그의 사진 속 풍광 마냥 을씨년스러웠다.
 
너무 황망히 떠난 이유도 있을 것이다. 루게릭병으로 3년 시한부 판정을 받고도 2년을 더 살아낸 그였다. 일주일 동안 꼼짝 못하고 끙끙 앓다가도 다시 일어나 갤러리에 나오던 그였다. 갤러리 일을 도와주던 박훈일(31)씨는 "선생님이 그렇게 다시 일어날 줄 알았다"고 했다. 28일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누워있는 모습이 불안해 "옆 방에서 잘까요"물었더니, "아니다. 들어가라"고 분명하게 말했단다.
 
그게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래서 난감할 뿐이다. 그의 사진들, 생전에 그가 "아마 7만장은 넘을 걸"이라고 자랑스레 말했던 작품들. 그걸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 연락을 끊고 살던 유족이나, 인근 주민 누구도 해답을 알지 못한다. 분명한 건 그의 작품이 창고에 차곡차곡 쟁여있다는 사실 뿐이다. 17번 개인전을 열었지만 그는 필름 한 컷도 내다팔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갤러리의 앞날이다. 고인은 지난 3년간 폐교를 뜯어고쳐 갤러리로 만들었다. 유족이나 인근 주민 모두 운영을 떠맡기는 부담스럽다. 지난해 초 문화관광부 직원이 두모악을 찾아가 "선생님이 돌아가시면 정부에서 운영을 맡겠다"고 제안한 바 있다. 그때 고집불통 사진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돌볼 이 없으면 다 태워버릴 것이오". 그랬던 고인은 태워 없애지도 않고 가버렸다.
어떻게든 김영갑의 필름과 갤러리는 보존되어야 한다. 어떻게 찍은 사진인데, 어떻게 가꾼 갤러리인데 팽개칠 수 있겠는가. 정부나 지자체, 아니 누구에게라도 도움을 청하고 싶다.
 
제주=손민호 기자 2005.05.30 21:17 입력 / 2005.05.31 06:39 수정 -----중앙일보 홈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