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대구시민기자

조선시대 왕실 유적지 - 성주 세종대왕 왕자 태실

바다오리~ 2017. 3. 22. 10:25

성주 한개민속마을로 봄 나들이를 왔다가

그냥 집으로 가기에 아쉽다면~~~~


한개민속마을에서 10여키로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조선시대 왕실 유적지의 하나인 세종대왕자 태실까지 둘러본다면~~



세종대왕자 태실은

세종대왕의 적자인 19명 왕자들의 태가 묻힌 곳이다

다만 왕이 된 문종의 태실은 이곳에 있지않고

문종의 적자인 단종의 태실은 이곳에 있다가 왕이된 후 가야산 자락으로 옮겼다고 한다
 


사진에 보이는 태실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세조의 태실이다

왕이 되면 태실은 "태봉"으로 격이 올라가고 "가봉비"를 세운다고 한다

왼쪽끝에 보이는 큰 비석이 바로 가봉비

이 곳 태실에서 유일하게 거북등을 발판으로 선 비석이다

 



태실도 왕릉에 준하는 장소이므로

태실을 둘러싸고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조선왕릉이 후대에게 주는 선물 중 하나가 바로 소나무숲이다

한 여름 더위에도 시원한 소나무숲

이제 봄이되면 솔 향기 맡으면서 산책하는 좋은 곳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누군가에 의해 훼손된 부분도 보인다

일제강점기 전국에 산재한 태실들이 일본에 의해 훼손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왕족들의 태실이 한 곳에 모여있는 것은 이곳이 유일하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태실을 조성하느라 백성들이 동원되어 고생하는 것을 보다못한 세종대왕이

당신 자녀들의 태실은 모두 모아서 한곳에 조성을 한 것이다

덕분에 지금은 이곳이 유적지로 역사교육의 현장이 되고있다

세종대왕의 혜안이 당대의 백성들도 살리고

후대의 국민들에게도 일거리를 만들어 주신 셈이다~~

 


한쪽에 멀찌감치 떨어진 태실의 주인은 바로 단종이다

왕자가 아니고 왕손이기에 거리를 둔 것이 아닌가 싶고

후일 세자로 오르면서 태실은 가야산 자락으로 옮겼다고 한다

태실은 옮기고 석물만 남아있는 셈이다

단종의 태실이 오른쪽 끝에 있고

세조의 태실은 들어오는 입구인 왼쪽에 있다

한 줄의 끝과 끝에 같이 위치했던 세조와 단종의 태실

 



이런식으로 아예 파손된 태실도 있다

위의 사진은 안평대군의 태실로 계유정난 후 파손되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화의군, 한남군, 영풍군의 태실도 파손 되었는데

이유는 세조가 왕위에 오르고 파손했다고 한다

 




태실에 보관되는 태는

왕실에서는 귀하게 여기고, 아이의 무병장수를 위해

왕릉과 마찬가지로 태실을 만들어 고이 간직한 것이다


생명의 탄생과 관련된 태실을 둘러보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지않을까~~


태실로 들어가는 입구에 태실문화관이 있다

이곳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태실에 관한 내용을 미리 알아보고 천천히 산책하면서 태실에 오르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영조의 태항아리를 모형으로 전시한 것으로

 


태실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를 자세히 알아볼 수 있는 모형

태 항아리를 묻고 그 위를 석물로 이중삼중으로 눌러서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하였다


태를 묻는 장태문화는 삼국시대부터 이미 전해 오는 풍습이라고 한다

다만, 왕실과 같은 곳에서 주로 행했다는 것이고

민가에서는 대부분 아이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면서

태를 자른 날 바로 태우거나, 물에 던지거나, 땅에 묻기도 했다고 하며

소수의 사람들이 태를 건조하여 보관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면 우리는

요즘은 제대혈때문에 탯줄을 병원에 보관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아이가 태어난 1990년대에는 병원에서 탯줄을 잘라서 그냥 주었다

그리고 그 탯줄은 지금도 아이의 앨범속에 고이 간직되어 있다

아이가 처음으로 세상과 연결된 생명줄이어서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