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영화보기

버닝 - 베이스 그리고 최승호

바다오리~ 2018. 5. 25. 18:04

이창동 감독의 최신작 "버닝"



영화 제목만큼 요즘 뜨겁다

그러나 영화는 오히려 잔잔하다

처음에는 카메라 워킹이 거칠어서 눈에 거슬리지만

점점 화면속으로 몰입된다



이창동 감독이 보여주는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카메라 워킹은

시간이 지날수록 화면속으로 몰입하게 된다

어쩌면 치밀하게 계산된 거친 화면인 것 같다


그리고 이창동 감독은 원래 국어교사였고

직접 쓰는 시나리오를 통해

대사 하나 하나를 꼭꼭 십으면서 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영화는 세명의 남녀가 이끌어 간다

벤, 종수, 해미


벤과 종수는 서로 다른 계층을 보여준다

그들의 공통점은 룸펜의 성향이 보인다는 것

벤은 돈이 남아도는 부르조아 룸펜

종수는 돈이 없는 프롤레타리아 룸펜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벤은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자극을 찾아 다니고

결국에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에서 희열을 느낀다고



"가슴에서 베이스를 느껴, 뼛 속까지 울리는 베이스를 느껴야 돼"


밴에게 해미는 자신의 무미건조한 삶을 생기있게 만들어주고

친구들에게 자랑할 거리를 제공하는 광대일 뿐이다

친구들 앞에서 해미가 아무리 열성적으로 얘기를 해도 벤은 그저 하품만 한다

얘기는 관심 없고, 그런 상황을 만드는 것만 관심있을 뿐이고

딱 두달동안의 자극이 끝나면 다른 여자로 또 바꾸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그런 벤이 내뱉는 "뼛속까지 전달되는 베이스의 울림"은 무서운 말이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사람을 인형처럼 여기는....

그렇다고 벤이 여자를 죽였다는 증거는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관객들의 상상에 맡길 뿐



그런데 종수는 실제로 살인을 저지른다



주인공인 종수의 대사는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왜냐면

종수는 그저 무기력한 존재로 시종일관 그려진다

그러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스스로 행동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으로

대사 대신에 몸으로 표현한다

벤을 찔러 죽이고 자신의 껍데기를 태우면서



벤을 찌르고 스스로 벤이 되는 것처럼 영화는 끝난다


벤과 종수의 관계를 만들어준 해미

종수 보다는 열심히 살려는 의지를 보이고

여행을 통해 삶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도 보여준다


여행가는 동안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를 생각할 정도로 열심이 산다

그렇지만 점점 삶의 기운을 잃고

 


"노을처럼 사라졌으면 좋겠다. 원래 없었던 것처럼, 죽는게 너무 무서워"

사는게 힘들어서 자살하고 싶어도 무서워서 못하고

노을처럼 사라지면서 생을 마감하고 싶어하는 처절함을 드러내고


"귤이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귤이 없었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거야"

라는 판토마임 대사를 통해 고단한 삶을 보여준다

그리고 진짜 노을처럼 사라져 버렸다

어떻게 되었는지는 그저 관객의 상상으로 만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상상이 아닌것은 벤의 죽음과 종수의 살인뿐이다.


그리고 영화속 영화가 있다

문화방송의 최승호 사장이 종수의 아버지로 출연한다

대사 한마디 없이, 자신이 만든 영화 "공범자들"에서

'자신을 거리로 내몬 문화방송 임직원들을 인터뷰하고, 기다리면서 쳐다보던 그 모습'처럼

무표정 하면서, 분노에 찬 모습으로 열연을 펼친다


"공범자들"에서 자신을 핍박한 권력에 저항했던 것처럼

영화에서는 축산 행정에 분노를 표출한 농민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 또한 상상이다.

종수 아버지의 사태는 두 줄의 판결문으로만 존재할 뿐 그림으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장면은 영화속 영화같은 느낌이 든다

종수 아버지로서의 모습 보다는

"공범자들"에서 뉴스타파 최승호 PD가 보여준 모습 그대로 나온다


버닝

제목처럼 뜨겁다, 난해하다는 평도 많다

무라까미 하루키의 원작 소설을 이창동 감독이 재해석한 것으로

원작을 영화화할 때 나오는 문제를 완전히 뒤집었다

원작을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창작

아마도 감독이 작가였기에 가능한 것 같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항상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고

대사 한마디 한마디는 영화가 끝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