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책읽기

스승 혜암 - 부처님오신날 원당암에서

바다오리~ 2018. 6. 5. 17:36

원당암

어머님 때문에 이 절과 인연이 이어졌다

지난 5월 부처님오신날 절에 갔다가 "스승 혜암" 책 출판을 알리는 광고를 보고 종무소에 들러 구입을 했다.



스님이 열반하시기 전에 어머님 따라서 부처님 오신날 몇번 절에 가서 스님의 법문을 들은적도 있었지만 머리속에 남은 것은 없고

공양간에 붙어있던 글귀는 처음부터 충격적이었고 지금도 생생하다.

"밥을 맛으로 먹지 마라"


지금은 공양간에 아무것도 없지만 예전에는 글귀도 붙어 있었고 피골이 상접한 불상 사진도 있었다.


아마도 처음 절에 오는 사람들은 상당히 충격적일 것이다.

밥 먹으러 공양간 들어왔는데 밥 먹지 말라고 하고, 밥을 맛있게 먹으면 죄짓는 기분이 들기도 하는 그 거부감


그런데 그 내막을 알면 그게 무슨 말인지 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 내막을 알 수는 없으니 괜한 오해를 주기 보다는 지금처럼 없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아마도 스님이 2001년에 열반하신 이후로 그 글귀가 사라진게 아닐까........(지극히 혼자 생각이다)


혜암 스님 말씀은 밥은 몸을 지탱하는 최소한의 에너지일 뿐 "식욕"에 끌려서 정신을 혼미하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상하게 원당암의 밥맛에 끌려 원당암 밥이 좋다.


최근 서울에 일보러 두세번 다녀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책을 다 읽었다.

평택에서 서울은 지하철로 1시간이 넘는다. 덕분에 책 읽기는 정말 좋다.



이 책은 스님의 일생을 돌아보는 전기 형식의 책이다.

스님과 연이 있는 스님들이 회상하는 스승의 모습을 그리면서 스승이 던진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공부하다 죽어라, 밥 먹지 마라"

혜암 스님이 평소 주장하신 핵심이다.

그 주장이 왜 나왔고, 그 주장을 스님은 어떻게 실천하셨는지를 풀어준다.


공부하다 죽으라는 것은 그 만큼 "간절하게" 공부하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공부가 쉬우면 공부가 아니다'라고 대학원때 교수님도 항상 강조하셨던 기억이 난다.

성공은 결핍의 바탕에서 싹이 피는 것처럼 "간절함"은 몸을 긴장시키고 자극을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의 종단은 "간절함"이 부족해 보인다. 이것은 조계종 종단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사회 전반에도 그러하지 싶다.

편하게 사는 것과 "간절함"은 다르다.

로마 시대 개선 장군들이 "메멘토 모리"를 외치는 노예를 곁에 두었던 것처럼

곤궁함을 잊지말고 맑은 정신으로 자신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우리는 점점 게을러지는 것 같다.

풍요로운 삶 속에서도 간절함을 잊지말아야 하는데 그게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혜암 스님과 성철 스님의 인연

그리고 혜암 스님이 원당암에 거처를 마련하신 게 성철 스님의 결정이었다는 것을 보면서

평소 두 분의 애틋함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을 다 읽고서 책장에 꽂힌 한 권의 책을 꺼냈다.

[고경 - 조계선종소의어록집]

성철 스님이 "단경"을 기본으로 선 수행에 관한 책들을 편역한 것으로

스님 열반하시고 상좌들이 정리해서 49재때 펴낸 책이다.

처음부터 이 책은 내가 읽기에 무리가 있는 책이었다. 그런데 나는 책 욕심에 덥석 받았다. 그리고 매번 책장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 외면했다.

그러다 오늘 "스승 혜암"을 읽고서 혹시나 싶어 꺼냈더니 묘한 인연이 느껴진다.



이 책은 1994년 5월 어머님 따라서 백련암을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서 어떤 스님으로 부터 받았다.

젊은 사람이 어머니 따라서 절에 왔다고 한번 읽어 보라면서 당신이 백련암에서 받은 귀한 책을 주신거다.

그때는 그게 귀한줄 몰랐는데 오늘 보니 정말 귀한책이었고, 그 분은 진짜 공부를 위해 필요한 책이었는데 왜 그걸 나에게 주셨는지

미안하고 마음이 무겁다. 오늘부터라도 책을 읽어야 겠다

그나마 제일 손이 가는 "임제록"이라도 읽어보아야 겠다.........



그 이후로 몰랐는데, 아마도 그날 스님을 만난 이후로 어머님이 원당암으로 가신 것 같다.

그날 책을 주신 스님이 원당암 스님이셨고, 그 때 원당암 얘기를 하시면서 어머님을 원당암으로 이끈 것 같다.

어머님은 원당암을 생전에 좋아하셨고 지금은 혼으로 그곳에 계신다.

그래서 나도 원당암을 매년 가게 된다. 그렇다면 원당암을 가는 것으로도 책에 대한 무거운 마음을 조금은 덜어도 되지 않을까...


그때 바랑에서 주섬 주섬 두 권의 책을 꺼내주시던 그 스님이 원당암 스님이었다는 걸

그당시 백련암은 올라가기도 힘들고 내려오기도 힘든 곳이었는데

날렵하게 내려 오시던 그 스님 "맑은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는 얘기를 하실 때는 참 강했던 분으로 기억된다.



그 나마 이 책은 읽기가 수월해서 바로 읽었다.



작지만 아담한 원당암



원당암의 보물 통일신라시대 석탑



올해 1월 평택으로 이사오기전에 들렀던 원당암

눈 덮힌 가야산 정상이 뒤로 보인다




원당암은 오르는 길이 가파르다

가파른 덕분에 오르면 가야산과 해인사가 한 눈에 보인다 



원당암 해우소 뒤편에서 바라보는 가야산과 해인사 장경각

장경각의 기와 지붕이 살짝 보일려고 한다.


원당암 홈페이지에 나오는 소개를 보면 해인사를 창건할 때 왕이 직접 와서 공사를 독려했던 곳이 원당암이라고 한다.

위 사진처럼 해인사 공사 현장을 멀리서 한 눈에 볼 수 있는 자리다.


원당암은 「해인사 1번지」 같은 상징적인 암자다. 해인사와 형제처럼 역사를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당앞에 보물 518호로 지정받아 보호받고 있는 석탑과 석등에도 암자의 나이테가 새겨져 있다.

신라 애장왕(哀莊王)은 공주의 난치병이 낫자 부처의 가호 (加護)로 여기고 해인사의 창건을 발원한 순응(順應)대사 를
몸소 크게 도와주었다고 한다.
왕은 서라벌을 떠나 가야산에 임시로 작은 집을 지어 절 공사를 독려하고 정사(政事)를 보기까지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의 당암이라는 것이다.

암자가 다시 활기를 찾게 된 것은 혜암(慧菴)스님이 머무른 이후부터였다고 한다.
혜암스님은 해인사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수 있는 해인총림방장('93년~'96년)스님을 지내시고 1999년 4월에 조계종
제10대 종정스님으로 추대되었다.

또한 원당암에서는 스님들과 똑같이 일반인들도 여름과 겨울에 한철씩 안거(安居)에 들어가 수행을 하는 국내 제일의
재가불자 참선도량으로 변모되었다.



공부하다 죽어라

요즘 종단의 잡음도 공부가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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